"인터넷 시대의 지적재산권"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08-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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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인의 권익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특허' 등의 지적재산권에 관해서도 논의가 필요한 것 같아, 관련 글 하나를 아래에 첨부합니다.  (앞으로도 '과학기술과 지적재산권' 글은 몇 편 더 올릴 생각입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소리바다 사건 판결 때문에 한바탕 시끌짝했고, 앞서서 미국에서도 '냅스터 사건' 때문에 오랫동안 논란이 많았지요. 인터넷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도 "관련 기술은 날고, 법률/제도는 기는" 현상이 한동안 지속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러한 지적재산권(산업재산권) 역시 전반적으로는 과학기술적 입장에서 풀어나아가야할 문제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래 글은 제가 한겨레신문 과학칼럼 '21세기를 여는 열쇠'에 글을 쓰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1999년 11월 쯤?) 짧은 칼럼글로 실었던 것인데, 이번에 새 책을 내면서 역시 많이 보완하고 부연설명을 해서 다시 썼습니다.  신문에 칼럼이 나간 후 법조인 등이 제게 메일을 보내오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21세기를 열 만한' 글이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뭐 그간 자주 거론되어서 거의 상식적인 수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때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던 이른바 '닷컴기업' 들의 거품이 걷히면서, 인터넷 도메인이나 비즈니스 모델 특허 등도 역시 전과 같은 과열 분위기가 많이 진정되었다는 느낌도 듭니다만, 앞으로도 인터넷 상의 지적재산권 문제에 대한 좋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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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시대의 지적재산권

                                                                         최 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21세기는 바야흐로 인터넷의 시대가 될 전망이다. 관련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을 거듭하고 있고, 인터넷은 단순한 정보취득 도구를 넘어서 우리 생활의 모든 구석에 침투하면서 기존의 생활양식 및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혁명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규범이나 의식, 법률적 장치 등은 이것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사회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문화지체' 현상을 실감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온라인 게임에 쓰이는 가상의 물건들을 훔친 '사이버절도범'에 대해 경찰이 마땅한 적용법규를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다는 사실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그 동안 전화, 텔레비전, 비행기, 컴퓨터 등 현대문명의 중요한 이기들이 선보일 때마다 격렬한 특허분쟁을 겪었는가 하면, 가정용 비디오기기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프로그램 녹화의 저작권 침해 여부를 놓고 소송이 벌어지는 등, 지적재산권 및 법률적 문제들과 관련된 적지 않은 진통이 뒤따랐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 역시 예외는 아니나, 그 속성상 인터넷기술 자체를 둘러싼 분쟁보다는 인터넷을 매개로 한 지적재산권 분쟁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둘러싼 분쟁이다. 원래 인터넷 도메인명은 웹 상의 주소, 즉 사이트 위치를 표기하기 위한 기능을 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상표와 거의 유사한 구실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표란 원래 자기의 업무에 관련된 상품 혹은 서비스를 타인의 것과 식별되도록 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이다. 또한, 일반적으로 '상호'를 상표로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프라인의 상호에 해당하는 것이 곧 온라인의 도메인명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회사의 이름이나 상호 자체를 "OOO.co.kr" 과 같이 도메인명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동산을 사람들간에 사고 팔 수 있듯이 상표 또한 거래의 대상이 되며, 이는 도메인 명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도메인명 자체가 갈수록 상표와 유사한 기능을 하게 됨에 따라, 둘 사이의 충돌 및 법률적 분쟁 등이 국내외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 외국의 유명한 석유회사 두 개를 합병한 회사의 인터넷 도메인 이름을 한국사람이 선점하여 거액을 벌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도메인 사냥이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첫 사례로 기억되는데, 과연 그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찬반 양론이 엇갈린 적이 있다.

그 이후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상호, 상표로 된 도메인명을 먼저 등록한 후 비싼 값으로 원래의 주인에게 되파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여 속칭 '사이버 봉이 김선달'로 비유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시대에 남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스쿼팅(Squatting)'에 비유하여, '사이버스쿼팅(Cyber-squatting)'이라고 불려져 왔다. 그러나 1999년에 미국 의회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하였고, 따라서 다른 사람의 상표권 등을 침해하는 도메인 등록은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법적인 제재를 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여러 도메인 분쟁에 대하여 국내 법원이 상표법이나 관련 법규를 유추 적용하여 판결을 내리는 추세를 보여왔고, 최근에는 민간전문가들로 구성된 도메인명 분쟁조정기구가 발족되어 도메인명을 둘러싼 다툼을 사법기관에 의한 해결에 앞서서 신속하게 조정하도록 꾀하고 있다.    

인터넷 관련 지적재산권 문제 중에서도 근래에 가장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인터넷상의 저작권 보호 문제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인터넷망의 급속한 확대에 힘입어, 인터넷상의 각종 컨텐츠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 넘어 거의 무한에 가깝게 복제, 확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본과 복사본의 차이도 없어져버렸기 때문에, 저작권 보호에 관하여 새로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또한 인터넷을 이른바 '카피레프트(Copyleft)' 정신 즉 정보의 자유로운 교환과 공유라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의 이념을 실현하는 장으로 생각하는 상당수 네티즌들과 시민단체들은, 인터넷상에서도 기존의 저작권 보호를 주장하는 측의 입장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미국의 냅스터(Napster) 사건, 즉 음악파일인 MP3를 네티즌간에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운영되는 인터넷 사이트에 저작권 관련 소송이 제기된 이 사건은 인터넷 저작권 문제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도 냅스터를 지지하는 수많은 네티즌들과 이를 불법이라 여기는 측 사이에서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진 바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성격의 음악파일 교환사이트가 법률적 분쟁에 휘말리면서 논쟁이 증폭되고 있다.

근래에 세계적으로 인터넷 사용 인구가 크게 늘고 인터넷을 이용한 각종 사업들이 활기를 띠면서 이른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Business Model) 특허의 출원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의 대표적인 예로서 사이버쇼핑몰, 전자화폐, 인터넷광고, 역경매 시스템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이 전통적인 산업기술과 마찬가지로 과연 특허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인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즉 비즈니스 모델은 특허의 대상인 기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사업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있고, 또한 카피레프트운동과 비슷한 맥락의 입장으로서 인터넷 관련 분야에 독점적 특허를 부여한다는 것은 지적재산권의 기본 취지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발전을 도리어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국에서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을 등록 받은 기업들이 그것을 무기로 하여 경쟁업체들을 견제하거나 격렬한 분쟁을 일으킨 바 있는데, 특히 아마존의 '원클릭서비스' 기술은 유명하다. 세계적인 인터넷 서점 업체인 아마존(Amazon)은 온라인쇼핑 후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한번 정보를 입력하면 나중에 다시 정보를 입력할 필요가 없이 결제할 수 있는 이른바 원클릭서비스 기술을 특허로 출원하여 등록 받은 후, 같은 방식을 사용해 온 경쟁업체를 제소하였다. 그런데 수많은 네티즌들이 아마존 불매운동 사이트를 만들고, 대대적인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 특허 반대 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인터넷시대는 흔히 미국의 서부개척시대에 비유되고 있다. 그런데, 광활한 대지에서 금광을 노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무법자'도 있게 마련이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보안관'도 필요하게 된다. 한편 디지털 문명과 인터넷이 보편화된 새로운 시대에는, 종전의 기준이나 법률적 규범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새로운 잣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1854년, 미국 서북부에 거주하던 인디언 부족의 추장인 시애틀(Seattle)은 그들이 대대로 살아온 인디언의 땅을 매수하겠다고 제의한 '워싱턴 대추장' 즉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피어스(Franklin Pierce)에게 "우리는 이 땅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그대들은 어떻게 하늘과 땅의 따사로움을 사고 팔 수가 있는가?"라는 요지의 답장을 보냈다. 오늘날 '추장의 선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은 다른 분야에서도 자주 인용되지만, 과학기술과 지적재산권 관련 문제에서도 인간이 배타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 동안 인터넷상의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논의들이 제법 진행되고 여러 대책들이 마련된 바 있지만, 앞으로도 관련정부기관, 과학기술자, 법률가, 일반 이용자 등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인터넷 시대의 바람직한 규범과 합리적인 법률적 장치들을 마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수험생 ()

      특허관련(변리사)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참 좋은 지적해주셨습니다만.. 우리나라 정책 입안 담당하시는 분들(특히 국회의원분들을 꼬집어서) 이런거 잘 아실라나 몰라요. 몇몇 분들은 별거아닌거처럼 이야기 하는걸 많이 본 터라 기대하기 어렵네요. 짧은 법률 지식으로 보아도 우리나라 과학기술 보호 보다는 돈벌이에 이용하게끔 하는것에 무게가 실리게 되네요

  • 수험생 ()

      법은 해석하기 나름입니다만.. 입법 취지 자체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아닌 기득권자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쪽이니.. 앞으로 기술 노예국 이라는 오명이 따라붙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텐데 말이죠

  • 최성우 ()

      (변리사) 수험생님께 답변이 너무 늦었군요...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변리사 등 산업재산권 관련 전문가들이 현장 과학기술인들과 함께 뜻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판사, 변호사 등의 기존 법조인들도 과학기술적 차원에서 문제의식을 지니고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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