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글쓴이
최성우
등록일
2002-08-27 10:01
조회
3,030회
추천
1건
댓글
0건
아래의 인터넷 상의 지적재산권에 이어서, '과학기술과 지적재산권'에 관한 두번째 글로서 그간 많은 논란을 불러 온 유전자 정보 및 생명과학 특허에 대한 글을 첨부합니다.
이 글 역시 한겨레신문 과학칼럼(21세기를 여는 열쇠)에 썼던 글을 이번에 새 책을 내면서 많이 내용을 보완하고 부연설명을 했습니다. 제가 유전자의 DNA 정보 등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과학기술에 있어서 특허가 허용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문제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 과학기술인의 입장에서는 과학기술 지식과 관련하여 가급적이면 넓은 범위에서 특허를 부여받기를 바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거시적인 안목에서 볼 때에는 공유되어야 할 지식의 범주에까지 독점적인 권리를 지나치게 남발한다면 결국 과학기술의 발전에 적지않은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기술인이 자신의 지식을 상품화하는 것 자체에 문제에 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니 이점은 오해 없으시기 바라고... 도리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과학기술인이 너무 자기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서 문제라고 생각하지요. 이 점은 '직무발명'에 관련된 권리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풀어 나아가야 한다고 봅니다만,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또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

생명과학 특허논쟁

최성우 (과학평론가; hermes21@nownuri.net)
- 상상은 미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中에서 -

인간게놈 프로젝트의 완성 및 유전자 정보의 완전 해독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생명공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인간 유전자를 비롯한 생명과학 관련 특허문제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에서도 엄밀한 의미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사업아이디어 범주에 가까운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영업방식)의 특허허용 범위를 놓고 큰 논란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 유전자 및 생명과학 특허문제 역시 세계적인 논쟁거리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미래의 생명공학 시대에는 인간의 유전자를 포함한 각종 생명관련 특허에 관한 분쟁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올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장래에 각종 난치병의 유전자치료가 보편화되었을 때 환자 자신의 몸에 있는 특정 유전자를 치료에 이용할 때에도 엉뚱하게 그 유전자의 특허권자에게 비싼 로열티(특허료)를 지불해야만 한다면 어찌될 것인가?

우리 특허법에 따르면, 특허 취득의 대상이 되는 발명을 '자연법칙을 이용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순수한 과학적 발견 자체는 원칙적으로 특허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만유인력 및 고전적인 운동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나 상대성이론의 창시자 아인슈타인이 자신들의 연구 성과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다. 또한 화학교과서의 표지 안쪽에 나오는 원소주기율표를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화학자들이 특허 등의 독점적인 권리를 행사하려 한 적도 물론 없다.
그러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화학 분야에서 유용하고 새로운 물질을 합성하면 이른바 '물질특허'로서 인정되는 경우도 많으며, DDT의 살충효과 발견과 같이 이미 존재하는 화학물질로부터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는 경우에도 '용도발명'으로서 특허권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질병치료 등의 유용성이 입증된 인간 유전자는 특허를 부여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미국 특허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입장이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지난 2000년에 인간게놈의 초안 발표를 앞두고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성과물을 인류 공동의 자산으로 공개하기로 합의한 바 있으나, 민간기업들의 유전자 특허 취득을 막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인간게놈 연구를 놓고 미국 정부 등이 주도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 국제공동연구팀과 치열한 속도 경쟁을 벌인 바 있는 셀레라 제노믹스를 비롯해서, 민간 생명공학기업들이 이미 등록 받았거나 출원중인 유전자 특허는 엄청난 수에 이른다.
그러나 '시민을 위한 과학'을 지향하는 단체나 관련 국제기구 등은 유전자 정보는 인류 공동의 재산으로서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독점해서는 안되며, 더구나 인간 생명을 대상으로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DNA의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생명공학시대를 연 장본인이자,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초기 총책임자를 지냈던 제임스 왓슨(James D. Watson) 조차도 인간 유전자에 특허를 부여하는 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라고 극단적으로 혹평한 바 있다.
또한 인간 유전자가 특허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는 원론적인 의문과 아울러, 유전자 특허들이 남용될 경우 생명과학의 발전에 큰 저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즉 관련 유전자들을 기반으로 하여 연구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심지어 대형 제약회사들조차 신약개발을 위한 유전자 테스트 및 실험 등에 지나친 특허료가 지불된다면 상품화가 곤란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인간 유전자 특허에 대한 논란과 아울러 생명복제기술 등에 대한 특허 역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 로슬린연구소로부터 관련 기술의 이용권을 사들인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제론은, 2000년 초에 영국 특허당국으로부터 생명복제기술의 특허권을 처음으로 정식 인정받은 바 있다. 영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생명복제 등에 관한 법적, 제도적 규제가 덜한 점도 먼저 특허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원인으로 작용한 듯한데, 이 기술은 곧 인간복제로 이어질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노동의 종말', '엔트로피'의 저자로 유명한 제레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생명공학기술 및 생명특허 반대운동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인간생명에 대한 상업적 특허권을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 그는 1997년 12월 미국 특허청에 한 생물학자와 함께 '사람과 다른 동물의 배를 융합시키는 기술'이라는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여 생명기술의 상업화 및 인간 존엄성의 위기에 대해 경고하려 하였다.
물론 리프킨의 의도대로 이 특허는 미국 특허청에 의해 거절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배아 줄기세포에 관련된 기술을 비롯하여 인간복제에도 활용될 수 있는 수많은 특허들이 우리나라와 미국 등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출원되고 있는 실정이고, 그중 일부는 특허로 등록되기도 한다.

생명관련 특허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남북문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북반구의 선진국들은 앞선 과학기술 지식을 이용하여, 남반구 개발도상국의 풍부한 생물자원 및 토착원주민들이 오랜 세월을 두고 사용해온 지혜를 가로채서 상업화하거나 자신들의 특허로 독점하는 경우도 많았다.
오늘날 식물에서 추출하여 사용하고 있는 모든 처방 약의 약 3/4은 토착민이 사용하던 약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몇 년 전에는 남태평양 군도의 원주민의 혈액에서 특정 바이러스를 채취하여 특허를 획득한 미국 정부가 해당 국가 및 국제단체의 반발에 밀려 결국 특허를 포기한 일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선진국들의 이런 행위를 '생물 해적질(Bio-piracy)' 혹은 '생물 식민주의(Bio-colonialism)'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 성과로 특허권 등의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온당하지 않은 일이라고 여겼다. X선의 발견자 뢴트겐(Wilhelm K. Roentgen)은 거액을 제시하면서 X선 발생장치의 특허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자신의 회사로 양도해 달라는 전기회사 사장의 부탁을 단호히 거절한 채, X선은 온 인류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고 하면서 공개하였다. 물론 X선 자체는 뢴트겐의 말처럼 애초부터 이미 존재하던 것이지만, X선 발생장치나 그 이용방법 등은 충분히 특허로 받을 수 있는 것으로서 그 권리를 독점했다면 뢴트겐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퀴리(Curie) 부인 역시 방사성 원소의 분리 및 이용 등에 관해 특허를 받았다면 백만장자가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언제까지나 '선비정신'을 요구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연구 성과의 상업화 문제는 현대의 과학기술 연구체제상 과학자 개인보다는 거액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자본의 요구 및 정치적, 사회경제적 이해관계에 의해 더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적어도 인간 유전자 및 생명과학 특허에 관해서 만큼은 `범인류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 기술도입을 통한 경제개발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원천특허들로 인하여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나라로서는 21세기 생명공학 및 관련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유전자 특허 및 생명특허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하겠다고 하겠다.



목록


과학기술칼럼

게시판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등록일 조회 추천
322 몇 년 전에 한국의 신문에서도 나카무라 슈지라는... 댓글 1 공과학 09-24 3962 0
321 [칼럼] '밈(Meme)'이 지배하는 미래사회... 댓글 1 최성우 09-24 7474 0
320 나카무라 슈지는 누구인가? 인과응보 09-24 4162 0
319 우리동네 스케이트장. 인과응보 09-23 3264 0
318 과학기술자가 본 북.일 정상회담의 의미 댓글 3 인과응보 09-20 2998 0
317 (회원게시판에서 옮겼습니다) 소요유 09-20 3188 0
316 "북한 과학기술과의 만남" 최성우 09-19 3003 0
315 일본과 미국의 기술개발자 대접 차이 (매일경제) 댓글 4 신병국 09-19 3521 0
314 외국계 IT업체들 이공계지원 앞장 눈길(서울 경제 신문) 댓글 2 신병국 09-18 3379 0
313 다가오는 산업공동화시대. 오늘자 조선일보를 보고... 댓글 14 인과응보 09-14 3875 1
312 "연구개발과 한탕주의" 댓글 4 최성우 09-10 3278 2
311 원자력은 생활인가? 댓글 64 인과응보 09-08 4082 1
310 이공계 기피 원인 분석 및 대책 - 종합정리 v1.0 댓글 31 임호랑 09-05 4665 0
309 답변글 [re] 이공계 기피 원인에 이공인의 문제는 없는가? 댓글 4 인과응보 09-14 3385 1
308 공대생, 공대예비생, 공대 졸업생 보세요. 댓글 7 해야공학 09-04 4842 2
307 [단상] "쌀과 보신탕"... 최성우 09-03 3498 0
306 유학생파견정책을 바꿔야한다. 댓글 11 인과응보 08-31 3955 1
305 공식논평해야하지 않을까요? 댓글 2 임종관 08-31 3193 0
304 결국은 요소기술개발이다. 댓글 9 인과응보 08-27 3493 0
열람중 "유전자 정보는 누구의 것인가?" 최성우 08-27 3031 1


랜덤글로 점프
과학기술인이 한국의 미래를 만듭니다.
© 2002 - 2015 scieng.net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