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가 하나가 아니면서도 하나인 이유...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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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등록일
2002-11-23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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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여러 글에서, "과연 이공계가 하나일 수가 있는가? " "우리가 단합할 수가 있는가?"에 회의를 품고 있는 분들이 많아서 제 생각을 적습니다.

글쎄... 이공계(제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학기술자, 과학기술인'이라는 말대신 왜 이공계라고 하는지 아마 아실 분은 아실듯...)가 단합을 안 한다?  그러면 싸이엔지 회원 6200명은 어떻게 설명이 되죠?  이공계가 단합을 안 하는게 아니라, 한번도 단합하려고 시도를 못해봤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계기가 마련되면 무섭게 단합할 수도 있는 집단이라는겁니다.)

그 동안 이공인들이 이런 모임 하나 변변찮게 갖지 못했던게 어쩌면 몇가지 하찮은 이유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하는 일에 너무들 바쁘고, 모일 장소나 시간도 마땅찮고, 모여서 문제해결하는 법도 몰랐고, 아예 그럴 생각도 해본적도 없고... 무엇보다도 이런 귀찮은 일은 남이 해주기를 바랐고, 또 누군가 앞장서주기를 바랬고...

그러다가 IMF를 맞으면서 얼마나 자신의 '작은 희망'이 허망하게 무너지는지를 알게 되었고, 누구나 쉽게 시간, 장소 구애됨 없이 모일 수 있는 '싸이엔지'가 만들어지면서 하나 둘 모이게 된 것입니다. 물론 박상욱님을 비롯한 초기 운영진들의 눈물나는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싸이엔지가 없다면 이런 불평이나 비관적 전망을 할 장소도 제대로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역사가 새로 쓰여진다면  2002년 2월 25일은 역사적인 날이 될 것입니다. 바로 싸이엔지가 탄생한 날이니까요.   

그리고, 이전에도 논의가 되었던 것인데, 지금까지 이공인들이 친목을 도모하는 문화도 못만들고 그러다보니 아귀다툼이나 하는 천박한 모습을 보이며 스스로 지식인이기를 거부한 '과거'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일부 공감을 합니다. (제가 보기에 뭐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것도 이공인들에게 그간 별다른 문화 자체가 없었다고 봐야지, '이공인들의 문화는 원래 그렇다'고 단정하는 것은 짜맞추기 논법일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대다수 이공인들은 이 땅의 마지막 남은 소외계층이라는 사실입니다. 한번 봅시다. 
이 땅의 수많은 공장 노동자, 철공소 직원, 청계천 부품상, 공고졸업 중소기업 사장/사원, 공장근무 고졸/대졸 회사원, 이공계 영업직, 이공계 연구원, 기시출신 공무원, 이공계 장교, 이공계출신 기자...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공계이고, 이들이 생산하고 수출하고 열심히 머리쓰고 뛰어다니고 해서 우리나라가 먹고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통적으로 동종의 동급의 인문계(고졸, 대졸, 석박사, 전문직 할 것없이)에 비해 소외의식을 느끼고 있고, 주류가 아닌 것으로 사회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에 있어서 광범위한 소외계층입니다.

그런데, 이 땅의 이공계는 분류하기에 따라 국민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대집단입니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2차산업 종사자가 28%인데, 이들 상당수가 이공계죠. 그리고 3차산업 중 기술직의 대부분이 이공계입니다. 다른 각도로 보면, 2년제 대졸이상의 46%(인문사회계는 47%), 4년제 대졸이상의 42%(인문사회계는 52%)가 이공계입니다. 공고졸업자는 당연히 이공계이고, 인문계졸업자 중 직업훈련원 거쳐 공장에 취직한 사람도 이공계입니다.

그러다보니 학력도 고졸(물론 중졸이하도 일부 있겠지만)부터 박사까지 다양하고 직종도 다양하고 직급도 다양합니다. 따라서 서로 느끼는 문제도 다 다르고, 봉급도 다르며, 사회적 대우/인식도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의 절반 가까이 되는 대집단이 이렇게 각기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걸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요?  직업, 근무지, 학력, 전공에 따라 근무여건, 처한 문제, 느끼는 정도 등이 서로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 똑같지 않은 것이 문제는 아닌 겁니다.

이상 이공계가 하나가 아닌 이유를 제가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공계는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이땅에는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계층이지만, 지금은 이만큼 거대한 집단으로 성장한 '신계층'이란 것! 이 땅에서 가장 땀흘리고 생산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만(2차산업이 GDP의 44% 감당), 우리 사회의 주역은 커녕 정신적 물리적으로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는 것!  그래서 직업, 근무지, 학력, 전공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주류' '피지배 계층'으로서 부당함, 사회 부조리, 억울함, 갑갑함(이 땅을 떠나고 싶은)을 느낀다는 것! 따라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똑같은 계층으로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 노동자, 여성계, 장애인, 서민, 특정지역인, 특정 직업, 외국인 등 차별받고 소외받는 계층의 이름은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공계는 특수 소외집단으로서 여성계와 더불어 가장 큰 사회적 소외계층이라는 것이 차츰 인식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과학기술문명이 발전한 곳에서도, 북한이나 중국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한국적인 차별과 소외현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단지 우리에게 행해지는 차별과 소외를 '해소'하는 것만을 지향하고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공리공론을 일삼고, 부정부패, 부조리의 온상이며, 실무와 현장을 제대로 모르고, 현대과학문명에 무지한 국가 지도층을 실무형으로 개편하여 이공계가 21세기 국가발전의 주도세력이 되는 것이 그 중 하나입니다. 또한, '차별없는 세상,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과학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이공계 문화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도 그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단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기존의 몇몇 이익집단과는 뚜렷히 차별화되는 '국민적 계층'으로 이공계가 발돋움해야 합니다.

다만, 싸이엔지 회원의 상당수가 석박사라는 점이 서두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이공계이면서도 이공계 문제에 무관심하며 남다른 차별의식을 보이는 일부 이공계 교수나 성공한 기업인이 지목 되어야지, 왜 싸이엔지에 참여하고 있는 석박사 이공인들이 지목이 되어야 하나요?  사실 이것조차도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논쟁일 뿐입니다. 분열될만큼 큰 이공계 집단이나 어디 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고나서야 분열하고 말고가 성립하죠. 

회원중에는 지금 명문대에서 박사학위하고 외국 유명 연구기관에서 포닥을 마치고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연봉 2000도 안되는 임시직, 계약직으로 불안정한 취업상태에 놓인 석박사나 실직상태의 기술사들도 즐비하다는 것을 고려해볼 때 단지 학력이나 자격의 차이를 이유로 이공계가 하나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공고 졸업후 현장에서 적응하기도 힘든 20대 초반의 회사원이 이공계 문제를 폭넓게 취급하고 대안을 마련하기는 힘듭니다, 물론 본인의 역량에 따라 안될 것은 전혀 없지만. (저도 공고출신 박사입니다만...) 그래서 당장에 자기 앞가림정도 하는 저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작게는 과학기술계(주로 석박사 연구원과 교수, 관료 등의 이공계 일부 직종을 의미), 크게는 이공계 전체의 문제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 것입니다.

싸이엔지는 학력, 직종, 전공, 직급, 직책과는 상관없이 모든 이공인들에게 열려있고, 지역, 종교, 정치성에 차별받음없이 누구든지 자유로이 회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경험해서 알만한 사람은 알지만, 우리 사회 어느 누구도 우리 이공계 문제를 내 일처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부질없는 일임을 깨달은 사람, 내 손으로 직접 세상을 변화시키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 적극 나서면 됩니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1)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회원수가 힘입니다!),
2) 무슨 일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작은 일이라도 참여하는 것(설문조사에 응하고, 강연회에 참석하고, 대선후보들에게 질문할 아이디어 내고 등등),
3)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으면 운영진으로 나서서 봉사하는 것 등입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지금 우리 국민들이 믿는 것은 과학기술계(좁은 의미의 이공계)뿐입니다. 이러한 일반 국민들의 기대에 적극 부응하기 위해서도, 이공계 자체 정화 및 실력배양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나가는 것은 물론, 국가발전의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또 강력한 실천을 통해 제 2 IMF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해내며, 이공계가 주도하여 21세기에는 선진 4강에 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제 이공인들의 진정한 힘을 보여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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