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단상 - 임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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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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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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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다시 올지 모를 밴쿠버의 밤이 깊어간다.
어제, 오늘 새로 접한 여러 사실들에 만감이 교차한다. 첨단기술로 큰 소리치는 인구 3000만의 나라 캐나다, 캐나다 땅에 탄탄히 자리 잡은 중국사람들, 배부른 거지 양반들, 편리하고 합리적이며 장애우에게 호의적인 버스, 비싼 인터넷, 중국인이 많이 찾는 한국 식당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한해 1.5만명의 이민(탈국 행렬)과 '가진 자'들의 배신적 행위이다. 캐나다도 4명이 이민오면 1명꼴로 이민을 나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해에 5천명이 역이민을 오고 있으니 3명이 이민나갈 때 1명이 이민들어오는 것과 크게 비교된다. 세계적으로 보면 국가간 경쟁력에 의해 인구 이동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인구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우수 인력과 재산이 이동하는 것이기에 이는 국가 존망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민자들중에 우리 나라를 위해 일한다면 크게 기여를 했을 우수한 인력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또한 수천억원을 해외 도피시킨 혐의로 수배받고 있는 재벌회장과 재벌 2세들은 또 얼마나 있을 것인가? 물론 아이들 교육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다, 사회적 차별이다 해서 우리나라를 떠났지만 이 곳에 와서 더 큰 고생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를 구분할 필요는 있다. 

미국이 한 해 수천억불의 재정적자를 내고도 버티는 이유가 이를 상회하는 이민과 투자 때문이다. 게다가 인도와 중국, 한국으로부터 고급 두뇌(대부분 이공계 석박사)를 공급받고 있어, 첨단기술이라는 국가발전의 엔진도 튼튼하게 유지되고 있다. 역으로 미국이 망하는 것도 순식간이다. 즉, 더 이상 미국이 '지상천국'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면, 이민과 투자가 급격히 줄고, 미국에 있던 '세계의 엔진'이 다른 나라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불어나는 적자에 허덕이고 선진국을 유지할 성장엔진을 상실하여 2류 국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한 때는 미국과 맞짱을 뜨던 러시아의 몰락 과정이 꼭 그러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필리핀은 한 때 선진국의 문턱에 다다를 정도로 경제, 문화 수준이 높았던 나라다. 하지만,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무능력, 해외재산 빼돌리기로 국가 재정이 급속히 기울자, '가진 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재산을 빼돌리며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살기 좋은 나라'로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졸지에 3류 국가로 전락하게 된 것 아닌가? 그 나라에 남은 대다수의 '못 가진자'들은 자신들이 잘못 뽑은 지도층 때문에 다른 나라로 식모살이나 3D업종 노동자로 품을 팔러 가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우리 나라의 이민 문제를 '국제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아니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먼저, 이민에 따른 경제적 손실만 해도 매년 수조원에 달한다. 간단히 계산해서 이민가는 사람들이 4인가족 기준으로 한 가족당 4억원(90%의 보통 가족은 2억원 내외, 10%의 부자들은 20억원 내외로 가정)을 가지고 나간다면, 1인당 1억원이니까 1.5만명이 1.5조원을 갖고 나간다. 역이민자가 있지만 대부분 빈털털이가 되어 오는 현실을 감안하면 크게 고려할 요소는 아니다. 또한 일부 '넉넉한 집안'에서 매년 송금해주는 금액과, '가진 자'들이 해외투자기업 등을 통해 합법을 위장하여 빼돌리는 수천억원대의 외화 등을 고려하면 1.5조원이 아니라 3조원 이상이 매년 국외로 유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런 금액이 투자나 수출로 나간 돈이 아니고 순수 외화 손실이기 때문에 이를 수출로 벌어들인다면, 통상 자동차나 가전제품의 외화 가득률이 매출액 대비 3%내외인 점을 고려할 때 3조의 100/3배 즉, 100조원을 수출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외화다. 우리나라의 '01년 수출액이 2662억불(320조원)이니까, 이렇게 수출해서 번 돈의 약 1/3은 해외로 빠져나갔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가진 자'들이 이민을 통해 광범위하게 병역을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사 한국 내에서 온갖 특혜를 누리는 자들 본인 및 자식들의 병역면제율이 보통 사람들보다 10배 가까이 높고, 그 사유도 대부분 신체 질환이나 정신질환이니, 이민자들은 여기서 보고 배운 것이라고 해야 옳을 듯 싶다. 그렇더라도 병역 기피목적으로 이민 간 사람들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자제들이 한국에 돌아와 활동하려 한다면 결코 내국인과 동등한 자격을 주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유승준 사건'에서 확인된 것처럼. (이런 구분을 해야한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이런 구분을 안 해도 되는 여건이 되면 좋겠다.)   


그런데......

근본적으로는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이민가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국가간 '국민' 모시기 경쟁이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마당이다. 결국에는 우리나라를 이민오고 싶은 나라로 만들지 않고서는 다른 수가 없다.  또한 이는 단지 조금 더 잘 살아보자는 차원이 아니라 아르헨티나나 필리핀처럼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현재 우리보다 GDP나 1인당 GDP가 높은 10-20여개 나라 중 부존자원이 충분치 않으면서도 선진국인 나라로서는 독일, 일본, 이탈리아 정도밖에 없다.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만 해도 풍부한 자원, 해외 관할령과 넓은 영토, 그리고 넓은 문화권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똑같이 흉내낼 수 없는 나라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목할 나라는, 이런 제반 여건도 불충분한 상태에서 선진국이 된 독일, 일본, 이탈리아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은, 세계 1, 2차 대전을 통해 무기경쟁을 하면서 확보한 과학기술력을 토대로 다시 일어섰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가 비록 전쟁에서 패하고 엄청난 전쟁 빚도 졌으며, 반세기가 넘게 미군의 주둔지로서 핵무기도 자유의지로 보유하지 못하는 국가지만, 다시 과거 연합국들과 같은 경제 수준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문제는, 이러한 국제질서 속에서,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들에게 있어서 한국은 눈엣가시이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국가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5위권인 프랑스와 12위권인 한국의 경제적 차이는 2배 정도밖에 안된다. 환율이 받쳐주고 수출입액이 이 추세대로 증가한다면 10년 이내에 G7에 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WTO나 기술규격 등을 통해 집요하게 한국을 공격하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다.

게다가 핵무기에다 인공위성 발사, 장거리 유도탄도 보유하고 있는 군사대국/인구대국/산업강국 중국이 우리의 전통산업분야를 급속히 잠식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잠깐 한눈 팔다보면 순식간에 20위권 밖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위태한 상황에 우리가 처해있는 것이다.

결국, 통일문제와 국방비 문제가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한이 정부재정지출의 17%, 30% 가까이를 국방비에 쏟아붇고, 20대 청년들을 70만, 200만명씩 군에 묶어 두고서 선진국이 되길 바란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남북대화의 최우선 목표로 전쟁방지를 둔 것은 잘한 것이다. 하지만 나아가 남북이 군비축소와 병력감축을 하지 않는다면 큰 실익이 없다. 일단 완전 통일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상호이익이 되는 경제교류나 남북철도 등의 무역/수송로 확보, 문화/스포츠 교류 등의 활성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이 유일하게 선진국이 될 길은 첨단기술에 의한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을 국가발전의 엔진으로 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역, 금융, 관광, 농업, 해양, 환경, 서비스업 등을 병행 발전시키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다 중요하지만 우선 순위는 확실하게 '기술입국'에 두어야 한다. 60-70년대를  '공업입국'으로, 80-90년대를 '산업입국'으로 본다면, 21세기는 '기술입국'이 화두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기능인력을 담당하고 있는 현장 노동자들과, 2년제 졸업자의 4/5, 4년제 대학졸업자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이공계 기술인력, 그리고 석박사급 지식인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이공계 고급 연구인력이 국가 발전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도록 국가 지도층을 실무형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현장도, 실무도 모르는 변호사 출신이나 문과 경영인들이 국가 지도층(정치인, 관료, 언론인 등)의 대부분을 장악하여 공리공론만 일삼고 차별과 특권을 만들어내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 무섭게 추월해오고 있는 중국의 국가 지도자들 7명 중 6명이 이공계이고, 한국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영진들이 대부분 전자공학박사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도 독일도, 미국도, 영국도, 프랑스도, 캐나다도 모두 이공계 인력들이 기업경영, 국가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지, 우리처럼 이렇게 철저히 소외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이래서는 우리나라는 비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 나라가 진정으로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아니 제 2의 필리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땅의 마지막 남은 큰 소외계층인 이공계(기능공, 기술자, 연구인력, 경영인 등)가 제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밴쿠버에서... 임호랑

  • 임호랑 ()

      참, 이번에 전인대회에서 중국 최고 지도자는 9명으로 늘었는데, 9명 전원 이공계입니다.

  • b.k.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Semi-lee ()

      제 주변에두 공부잘하고 영어 의사소통만되면 너도나도 다 나가던데요. 저도 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인력을 어떻게 활용할 지 모르는 나라에서 썩히느니 그 사람 개인으로서는 나가서 자신의 능력을 맘껏 발휘하는게 나을 수도 있지요. 우수 인력들이 회사에 오면 어차피 상사한테 혼나고 레포트 쓰는건 다 똑같잖아요. 틀에 짜여진것 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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