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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새로운 생명윤리 및 로봇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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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랑 작성일2002-09-14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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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달다보니 말이 길어져서, 답글로 남깁니다.

저는 생명윤리와 로봇윤리를 근본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다고 보고, '신의 영역'을 논하는 서구의 좁은 의미보다는, 자연과학적인 진리를 토대로 한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유전자 조작 생물이나 반도체 칩이나 모두 존귀한 대상물입니다. 이를 '생명'이나 '인간기준적' 가치로 보는 것은 편협되었다고 봅니다. (생명의 가치기준으로 보면 "유전자 조작 생물 >> 반도체 칩", 인간기준적 가치기준으로는 "유전자 조작생물 << 반도체 칩")

즉 '윤리의 틀' 자체도 검증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이 이른바 현실성(=가치의 경제성) 없는 윤리기준이라는 비판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주적(=동양사상적) 가치에 근거한 새로운 과학기술 윤리로서 BT, IT에 대한 사상적 기초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미 유전학적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인간'이나 '소'라는 고정된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유전적으로 다 다르고 또 세대를 거듭할 수록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표준 인간', '표준 소'라는 것이 관념적으로만 있지, 현실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얘기죠. 하지만, 그렇면서도 현존하는 지구상의 대부분의 생명체는 유사한 세포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적어도 한 뿌리이거나 아니면 서로 부단히 생물학적으로 교번하고 생물학적 정보를 교류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방증입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판단해볼 때, 유전자 조작에 의한 새로운 생명체 탄생이나 인공지능에 의한 지적능력 보유를 경원시하고 이단으로 보려는 것은 서구문화(=신 중심적 문화; 이미 서구에서도 100여년전부터 형식만 남아버린...)의 한계로 보입니다. 이것(=나, 인간, 생명, 반도체 칩...)이 존귀하면 저것(=너, 동물, 비생명, 똥...)도 존귀한 것이지, 한 쪽 편에 서서 만든 잣대를 '윤리'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저쪽에게 들이대는 것은 우매하고도 반지성적인 시각입니다.

이제 '생명과 물질', '인간과 동물'이라는 대립적 범주를 떠나, '물질과 정신'의 범주, 아니 이 마저도 통일적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유물론도 아니고, 유심론도 아닌... 그런 면에서 전 유전자 조작이나 인공지능을 '전통적 윤리의 틀'로 평가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동양사상적 틀'로 평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형이상학적으로는 제가 앞서 언급한 틀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며 새로운 가치부여를 해나가고, 형이하학적으로는 과학기술적 전문지식에 기반을 두고 유전자 조작에 의한 것이든 화학물질의 남용이나 환경오염에 의한 것이든 새로운 변종이 발생해서 기형생물이나 내성을 가진 강력한 미생물이 출현한 문제를 놓고 유해성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 대응책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자연주의적 윤리관은 유전공학이나 인공지능같은 공학적인 문제 해결에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장애우에 대한 편협된 인식문제 개선, 인간들의 각종 사회적 편견에 대한 현대과학적 처방, 인간이 아닌 생물에 대한 인간들의 편견과 환경문제 해결 등 인류가 당면한 많은 문제해결에 열쇠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전통적 서구의 틀로는, 한편으로는 동물을 남획하고 자원채취를 남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동물보호나 환경보호 및 '고정된 인간과 동물에 대한 형상'에 집착하며 새로운 과학을 터부시하는 이중적, 모순적 행태를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이 새로운 윤리가 필요한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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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박사과정 때 고민해봤던 주제에 대해 한번 정리해봤습니다.
근데, 그 때나 지금이나 서구적 생명윤리관은 바뀐게 없군요. 그게 바뀔 대상입니까? 2000년 넘게 그것만 옳다고 믿어온 세계관인데.... 이렇게 좁은 세계관으로도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니, 정말 현대 과학기술의 힘은 너무도 세군요, 나라나 민족도 차별하지 않고... 다른 모든 약점을 덮고도 남을 정도이니.....

댓글 9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아~  흠~ 역시나.....    괜찮은 접근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준형님의 댓글

준형

  혹시 이런 접근을 한 책이나 논문들이 없을까요? 영어든 한글이든 읽어보면 많은 도움이 될듯 한데요. 아니면 호랑님 계서 멋진 글을 하나 더 써주셔도~

임호랑님의 댓글

임호랑

  양자물리/화학을 동양사상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칼텍의 카푸라 교수를 비롯 하버드 학파들에 의해 많은 작업이 이루어졌고요.... 생명과학/유전자공학이나 로봇공학/인공지능을 동양사상적으로 접근한 서구 학자들의 예는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상당수준 동양사상을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념적인 이해에 그친 한계를 종종 노출시키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결국 이 작업은 동양권 과학철학/과학사상가들의 몫인데, 중국, 인도, 일본에서 일부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동국대, 정신과학회 등에서 제한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암튼 체계적인 연구가 덜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그렇죠. 아무래도 양쪽으로 이으려면 새로운 파라다임이 필요할 지도 모릅니다. 전 한때 케이어스 이론쪽에 혹 통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역시 과학외적인, 혹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와 과학과의 접목은 상당히 꺼려지고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성우님의 댓글

최성우

  호랑님이 거론하신 '생명관'은 저도 참 관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독자적 생존 능력이 없는 바이러스가 생물이냐 무생물이냐, 다 나아가서는 자기복제와 증식 능력이 있는 '컴퓨터 바이러스'도 생명체인가 등등의 논의가 뒤따를 수 있지요...  장회익 교수는 이른바 '온생명' 관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준형님이 질문하신 책 중 추천할 만한 것으로는 장회익 교수님의 '과학과 메타과학', 그리고 '삶과 온생명' 이 어떨까 합니다.

최성우님의 댓글

최성우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맞는데...  동양사상적 접근방식 역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일부는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자칫 '사이비 과학'에 빠질 수 있는 우려들도 적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Chaos 이론 역시 지금은 주류 과학의 틀 내로 들어온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그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해석 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신과학'이라는 류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서 신문 칼럼을 쓴 적도 있습니다만...)   

최성우님의 댓글

최성우

  책 한권만 더 추천하자면, 홍성욱 교수의 '생산력과 문화로서의 과학기술'(문학과 지성사)...  이 책은 상당히 여러 주제를 담고 있는데, 몇년 전 미국에서 큰 논란이 된 바 있는 이른바 '소칼 사기사건' 관련해서 과학과 철학의 근본문제들을 다룬 글들이 좀 많고(이 부분들은 좀 어렵습니다.), 생명 관련 주제로는 복제, 사이보그 등에 관한 글들이 있습니다. 

소요유님의 댓글

소요유

  역시 '신과학'류가 너무 의욕만 앞서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칼자루를 쥐면 휘둘러 보고 싶은 법이긴 한데, 역시 '연역적 접근'의 위험성이랄까요 ?  귀납적인 전개가 좀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 밖에 없는데 반하여 연역적 접근은 좀 '대담해 질 수 있다'는 점이 다르겠지요.  그런 의미로 일전에 우리 게시판에도  논의되었던 '상대론을 위시한 과학 주류에 대한 대안 확신론'들이 이런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성우님의 댓글

최성우

  저도 다음번에 다시 책을 낸다면, 이제는 '과학철학' 관련 문제들을 한번 다루어보고 싶습니다...  첨단과학기술 분야들의 Survey 및 시급하게 쟁점이 되는 현안들을 주로 신경쓰다 보니, 이 문제는 관심이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거의 손을 못댔는데...  (대학원 졸업 즈음에 '현대물리학과 철학'이라는 주제로 논문 비슷한 것을 낸 이후로는...)  역시 과학에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들인 만큼 , 좀 어렵긴 하지만 꼭 조명해 보았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이런 책이 얼마나 팔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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